한국 민물낚싯대의 변천사
1세대 - 대나무 낚싯대
2세대 - 글라스 낚싯대
3세대 - 카본 낚싯대
4세대 - 티타늄 낚싯대?
우리나라의 낚싯대는 옛날부터 특산인 시죽(신우대)와 조릿대를 다듬어 만든 통대나무 낚싯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음낚싯대를 만들어왔는지, 낚싯대에 낙관을 넣는 낚싯대는 언제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승계되어 왔는지, 이러한 죽간의 계보는 안타깝게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간의 발상지와 제조 방법 등을 더듬어 볼까 합니다. 나름 공부해서 계보도 만들어보았습니다.
자세한 기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정기 씨가 만든 '주작'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만든 낚싯대로 전해집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한편 주작과는 별도의 흐름으로 평안도 출신의 한승진, 한승권 씨 형제의 '한작'이라는 이름의 죽간은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전쟁 후, 두 분은 경기도 용인시의 유방동(당시 버드실마을)에서 '한작' 죽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후에 형인 한승권 씨는 서울(1957~1974년) '서울 한작'이라는 이름의 죽간을 만들고, 동생인 한승진 씨는 1957년 이후 수원에서 '수원 한작'이라는 죽간을 만들었습니다.
한작은 그 뒤, 조철연 씨가 용인에서 '용인작'(1957~1972)이라는 이름으로, 임승문 씨가 '용인 한작'(1959~1971)이라는 이름으로, 임근수 씨가 '용림작'(1959~1971)이라는 이름으로 계승했습니다. 그리고 강재원 씨가 '용작'(1964~1976)이라는 이름의 죽간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임근수 씨로부터 전수받은 방기섭 씨가 '승작(昇作)'이라는 죽간을 만드셨는데, 이것은 전남 순천시의 옛 지명 '승주'에서 붙여진 죽간명이라고 합니다.
방기섭 선생님은 대나무낚싯대 제작 공방인 '승작대나무낚싯대제작소/공방'에서 작업을 하고 계시다가 2006년 11월에 별세하셨습니다.
현재 유일하게 전통 대나무 낚싯대를 방기섭 선생님으로부터 생전에 계승받은 이문석 씨는 전라남도 순천에서 계속해서 '승작대나무낚싯대제작소/공방'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이문석 씨께 전화를 드려 궁금한 점들을 여쭈어보았습니다. 전화상으로 많은 이야기는 못나누었지만,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방기섭 선생님의 큰아드님께서 승계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승계포기를 하셨기에 이문석 씨가 승계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방기섭 선생님의 죽간 제작기구를 만들어드린 분은 이문석 씨의 부친이셨고, 문석 씨의 후계자는 현재 없다고 하십니다.
아무튼, 약 10년간 대나무 낚싯대는 호황기를 맞았으나 1968년초에 등장한 글라스로드 낚싯대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듭니다.
누군가 전통 대나무 낚싯대를 계승발전시켜주기를 바라지만, 우리나라 사정상 그리 쉬운 일도 아닌 듯합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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