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물낚싯대의 변천사
1세대 - 대나무 낚싯대
2세대 - 글라스 낚싯대
3세대 - 카본 낚싯대
4세대 - 티타늄 낚싯대?
196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낚싯대는 대나무 이음낚싯대 또는 통으로 된 대나무 낚싯대였습니다.
쉽게 구할 수가 있었고, 잘 부러지지 않고, 휨새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들어서 낚싯대 소재가 유리섬유로 바뀌었습니다.
FRP라는 섬유강화 플라스틱이란 소재가 나온 것입니다. FRP는 단일소재가 아니고 유리섬유와 합성수지로 구성된 복합재료입니다. 일명 파이버 글라스(Fibre Glass) 낚싯대 또는 글라스 로드(glass lod)라고 불리었습니다.
이음낚싯대가 아닌 안테나식 낚싯대이었으며, 유리섬유는 탄성과 강도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좀 무거운 것과 표면 페인트의 결함으로 물기를 오래 머금게 되면 표면에 수포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규격화된 낚싯대의 대량생산으로 낚시의 대중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965년경부터 대나무 낚싯대는 낚시점, 낚시터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1964년 12월에 서울에서 플라스틱 생산업체인 오리엔탈공업(주)에서 글라스로드 낚싯대를 제조, 수출까지 하였고, 국내에는 65년 이후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리엔탈공업은 낚싯대를 시작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88서울올림픽 때는 잠실 주경기장을 비롯해 대부분 경기장의 관중석 의자를 납품하며 승승장구 했으나, 자금압박 등으로 갑자기 부도(1966년?)가 나서 낚싯대 부분은 '로얄공업'으로, 플래스틱 부분은 일본기업인 '내쇼날 프라스틱'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사진은 1975년 4월에 찍은 것으로 오리엔탈 낚싯대 3칸대로 낚시를 하는 모습입니다.
일본산 낚싯대는 유리섬유에 합성수지를 발라 만든 복합재료 낚싯대였습니다.
일제 낚싯대의 소재가 유리섬유라는 것을 알아낸 뒤 자본주를 찾아 낚싯대 생산업체인 은성사를 1968년 1월에 부산에 세운 분이 조용준 씨(현 한국화이바 회장)였습니다.
소재와 가공 열처리 등에 관한 책을 구해 독학으로 기술을 익혔고 일본에서 유리섬유를 구해와 복합재료 낚싯대를 개발해냈습니다.
‘실스타’란 상표로 전세계 낚시인의 마음을 낚아챈 은성사 신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의 나이 23세 때였습니다.
1968년 11월에는 해동산업(용인)에서 글라스로드 낚싯대를 출시했습니다.
1969년 6월에는 서울에서 로얄공업에서 글라스로드 낚싯대를 출시합니다.
1971년 엔젤이란 브랜드와 반도라는 브랜드의 글라스로드가 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1973년에 이르러 대나무낚싯대 공장은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1976년 9월에는 부산에서 용성공업사가 글라스로드 낚싯대를 출시했습니다.
원다라는 회사도 있었으나, IMF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부도를 맞아 사라집니다.
글라스로드 낚싯대는 저렴하면서도 오래가는 낚싯대로 약 20여 년간 낚시인들에게 사용되어왔으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카본파이버'를 소재로한 낚싯대의 등장으로 사양길로 접어듭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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